질문을 통해 삶을 바꾼 사례와 중요한 순간에 질문을 통해 큰 도움을 받아 전환이 일어난 경우들을 다루어 보면서 함께 활용하면 좋을 질문들을 나누고자 한다.
경영학의 대가를 만든 질문
빌 게이츠를 비롯해 전 세계 최고경영자들과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피터 드러커는 어릴 때는 어떤 분야에서도 천재성을 발휘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경영학 분야의 독보적 구루가 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피터 드러커 전문가인 이재규 교수는 ‘피터 드러커처럼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예측력이 아니다. 그것은 질문하는 습관이고, 이것은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피터 드러커는 조직과 사람들에게 답을 제공하기 보다는 그들 스스로 답을 찾도록 질문하는 사람이었고, 스스로도 자신에게 질문하고, 자신이 하는 대답에서 스스로 배우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도 질문능력을 키워 자신의 성장과 삶,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과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어떨까?
잡스와 웰치의 삶을 바꾼 중요한 결정에 도움이 되는 질문
스티브 잡스는 17세 때 ‘매일 인생의 마지막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거의 틀림없이 올바르게 되어있을 것이다’라는 경구를 읽고 그 날 이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질문은 그 후 그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GE의 화학사업 담당 사장에서 GE 회장으로 승진한 잭 웰치가 구조조정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조언을 구하자 피터 드러커는 "만약 당신이 지금까지 이 사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면, 오늘 그 사업에 뛰어들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 - 'If you weren't already in this business, would you enter it today? And if not, what are you going to do about it?'"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 질문은 잭 웰치가 중단할 사업을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비대해지고 둔해진 GE를 날렵하고 강한 회사로 다듬어 회사의 가치와 경쟁력을 극대화 하였다.
만약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명료함이 더 필요하다면 아래 질문을 함께 활용해 보자.
‘결정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변하는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결정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10년 뒤에 이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죽기 직전에는? 죽은 뒤 후손들은?’
삶의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도움을 주는 관점전환 질문
혹시 요즘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안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그 문제에 대해 아래의 질문에 답을 적어보자.
‘이 문제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
‘아직 완전하지 않은 부분은 어느 곳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일의 해결과 성공을 위해서 내려놓을 것은 무엇인가?’
‘이 과정을 통해서 즐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위 질문들은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로 유명한 ‘앤서니 라빈스’의 질문을 필자가 약간 다듬은 것이다. 위 질문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하는 관점전환 질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관점전환 질문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이를 통해 인식이 확장됨으로써 불편한 감정이 줄어들고 보다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
A팀장: 퇴사를 생각 중인데 언제쯤 할지,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게 좋을 지, 사업을 하는 게 좋을 지 고민입니다.
코치: 무엇이 퇴사를 생각하게 만들었나요?
A팀장: 최근에 조직 개편이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 팀과 다른 팀이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제가 통합 팀의 팀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 글쎄 무능한 그쪽 팀장이 되었지 뭡니까. 제가 밀린 것도 기분 나쁘지만, 그런 무능한 팀장 밑에서 일 못하겠어요. 그리고, 이렇게 조직 개편이 된 것은 저 보고 나가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아요? 그래서, 퇴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코치: 흠, 많이 실망스럽고 화가 나셨겠군요.
A팀장: 맞아요.
(중략)
코치: '무능한 팀장'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장님은 그 팀장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A팀장: 제가 생각할 때는 그 팀장이 무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장님은 그 사람의 다른 능력을 봤을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 들었어요.
코치: 그 생각을 바탕으로 다음 한 주간 실행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팀장: 그 팀장의 장점은 무엇인지, 나에 비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를 찾아봐야겠어요. (이하 생략)
A팀장은 그 후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능력이 개발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성과를 내며 팀장으로서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와 바이런 케이티의 삶을 바꾼 질문들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접시닦이, 세차, 청소부, 벌목꾼, 잡역부 등 온갖 허드레 직업을 전전하며 노숙을 했던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인생을 바꾼 질문은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성공적인 삶을 사는가? (Why are some people more successful than others?) ‘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트레이시는 세일즈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었고,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동기부여가 중 한명이 되었으며, 그의 저서들은 31개국 18개 언어로 출간되었다.
이혼과 실패로 피해망상증과 우울증, 자신에 대한 분노와 좌절로 가득차 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있던 바이런 케이티에게 완전히 다른 삶을 살도록 도운 ‘네 가지 질문’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에 눈을 뜨고 삶의 변화를 얻도록 돕고 있다.
그것이 진실인가요? Is it true?
당신은 그것이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나요? Can you absolutely know that it’s true?
그 생각을 생각할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How do you react, what happens, when you think that thought?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Who would you be without the thought?
앤서니 라빈스의 삶을 바꾼 긍정적인 질문들
가난으로 고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빌딩 청소부로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 일이 끝나면 10평 남짓의 허름한 아파트 방안에만 틀어박혀 슬픈 음악을 들으며 부정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던 한 남자가 있었다. '왜 나는 성공할 수 없는 걸까?' '사람들은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야?' '왜 하필 나란 말이야?' 그의 질문 대부분은 부정형의 질문이었고 그 답은 '가난하고 못 배우고 뚱뚱하고 못생겼기 때문이야'라는 부정적인 답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왜 자신이 실패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에게 던졌던 부정적인 질문에 있었다. 얼마 후, 그는 아침저녁으로 인생에 동기부여를 해주는 긍정의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실패하는 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가 바로 ‘앤서니 라빈스’다.
지금 내 삶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에서 나를 들뜨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에서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즐기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나를 사랑하는가?
나는 오늘 세상에, 조직에 어떤 공헌을 했는가?
내가 오늘 배운 것은 무엇인가? 일을 잘 처리했든 실수를 했든 그 모든 것으로부터 어떤 것을 배웠는가?
오늘 내 삶에서 발전을 이룬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이룬 것을 어떻게 내일을 위한 투자로 활용할 수 있을까?
The Big Questions
‘자신이 죽은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가?’
피터 드러커는 "사람은 자신이 죽은 후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는 조셉 슘페터가 임종의 자리에서 한 말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았으며, 임종 직전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들은 고등학교 이후 내 삶을 이끈 질문이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좋은 질문은 사람을 바꾸고 인생을 바꾼다. 특히, 쉽게 답을 하기 어려운 진지한 질문들은 질문 그 자체로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에 남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사유하는 그 자체로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 이러한 Big Question을 가져 보자. 자신의 삶을 위해서 또는 자신의 일을 위해서 ‘...하라’형의 말 보다는 Big Question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지금 자신에게 도움이 될 질문 4가지를 만든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은가?
오늘은 연수 마지막 날이다. 다들 시원 섭섭한 모양이다. 수련도 힘들고, 중국음식 먹는 것도힘들기 시작했고 무더운 날씨도 만만치 않는 등으로 인해, 연수를 마치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아직 배우고 훈련해야 할 부분도 많기에 아쉬움도 함께하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 있어서 인지 새벽5시도 안되어서 개인수련을 시작했다. 그간 배운 사항들을 정리해 보는 마음으로 연습하였다.
오늘은 ‘옥녀천사’부터 남은 부분을 모두 다루었다. 앞에서 배운 주요 요결들을 바탕으로 자세를 다듬어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종 중심을 가라앉히면서 힘을 빼고 부드럽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게 각 동작을 연결시키는 흐름을 유지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훈련했다. 오늘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는 약37%의 남은 동작을 오늘 다 어떻게 다룰 지 궁금했었는데, 하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오후 시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면서 다시 점검하고, 수료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하계중국연수를 마무리하였다. 수료기념촬영에는 호주에서 온 앤디가 함께 해주었고, 그간 함께한 시간들을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사진에 갈무리했다.
(하계연수 수료기념 단체사진)
(서명원 관장님과 앤디2)
중국식 닭 도리탕(한국의 닭도리탕과 너무 흡사하다)과 함께 하계연수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고 수첩형태의 수료증서를 받았다. 여기에는 수료증 외에도, ‘역대진식태극권계보’, ‘陈氏先輩门規戒律(진씨선배문규계율)’, ‘陈家沟太極拳学校簡介(진가구태극권학교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함께 들어있다.
참가회원들의 소감
작별과 돌아오는 길
아침식사에 진소성 노사께서 함께 하셨다. 식사 후에는 마침 그 앞을 지나시던 소가식 태극권 전인이신 진립법 노사님을 뵙게 되어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진소성 선생님과 작별의 인사를 하고, 오던 날처럼 두 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태극권학교를 출발했다. 진소성 선생님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 진립법 노사님과 기념 촬영 한 컷 )
(진소성 선생님과 필자)
우리가 이곳에 올 때는 들녘에 다자란 밀들이 누렇게 익어서 물결을 이루었는데, 대부분 수확이 끝나고 밀짚들이 군데군데 뭉쳐있거나 빈 여백만 남아있었다. 우리도 7박8일간 하계중국연수의 수확을 가지고 황해바다를 건넌다. 태극권의 본고장 중심에 있는 진가구태극권학교에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배운 귀한 경험은 함께한 회원 모두의 마음 속에 평생의 기억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이틀 전 마지막 동작이었던 ‘신선일파조’ 자세부터 다시 바로 잡는 것으로 시작한 오전 수업은 ‘제 3 엄수굉권’까지 진행되었다. ‘신선일파조’에서 뒤를 돌아 ‘척이기’의 뛰며 발을 차올리는 동작 전까지 중심을 계속 가라앉힌 상태로 진행되는 것이 주요 교정 포인트였으며, ‘척이기’ 이후 ‘호심권’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긴장을 풀고 자연스러운 중심이동이 시의 적절하게 이루어지는 점이 주요 포인트였다. 이어 ‘선풍각’,‘우등일근’, ‘엄수굉권’으로 이어지는 발차기와 몸을 움직이는 부분에서는 중심을 가라앉힌 상태를 유지하며 온몸을 이용한 자연스러우면서도 강한 발차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후 수업은 ‘소금타’에서 ‘제4 단편’까지 진행되었고, 이후 ‘쌍수대전사’에 대한 교정이 있었다.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진소성 노사께서 우리와 함께 노가1로를 표연하셨다. 우리는 모두 힘들면서도 흡족하였다.
(진소성 노사님과 함께한 노가1로 중 난찰의)
진가구 장날 풍경
수업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니 밖이 시끌시끌하다. 오늘은 진가구 장날. 숙소 창 밖은 장이 서는 메인 스트리트인 것이다. 이삼 일 전에는 이 거리로 결혼식 행렬이 지나갔었다. 선도 차량에 탄 두 사람이 폭죽을 터뜨리며 지나가면, 신랑 신부가 탄 오픈카가 따라 가고, 그 뒤로 하객들의 차가 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태극권학교 정문 쪽에서 장이 선 거리방향으로 본 모습 주요 교통수단인 스쿠터가 가득 찼다.)
씻고 장터거리로 나섰다.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나라 시골장터를 연상시키는 듯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역시나 이곳 주변에서 주로 재배되는 채소, 과일 등이 많이 나왔고, 여기저기에서 흥정을 하는 시골상인과 손님, 엄마 따라 나와서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바쁜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더운 지역이라 그런지 웃통을 벗고서 바지만 입은 채로 일을 하거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남자들만… 우리나라 장터와 가장 차이 나는 점 중에 하나는 호객행위 하는 소리가 별로 없었다. 가끔 스피커로 하는 것은 들렸지만, 우리나라처럼 구성지고 쇼에 가까운 호객행위는 볼 수 없었다. 또 하나는 우리에 비해 먹거리를 만들어 파는 곳도 상대적으로 적어 보였다. 국수와 같은 면류를 만들어서 파는 곳이나, 묵과 같은 종류를 면처럼 뽑아서 냉국 비슷하게 파는 곳, 간단한 꼬치류를 파는 곳, 죽통밥으로 보이는 것을 파는 곳 정도가 눈에 보였다.
진가구 장날 풍경 1
진가구 장날 풍경 2
회족이 직접 만든 신발을 판다고 써 붙여 놓고 신발을 파는 곳과 현장에서 직접 참기름을 짜서 파는 모습,한류의 영향인지 다소 어설픈 한글과 게임 캐릭터를 인쇄한 썬캡이 흥미로웠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캐릭터로 보이는 여성모델(모델료나 캐릭터 사용료는 안 내었을 듯.)에 띄어쓰기가 맞지 않는 한글이 인쇄된 썬캡 ‘완다 싱 모자’)
장이 선 거리의 한쪽 벽은 태극권 학교와 태극권 박물관이 이어진 벽이었는데, 하도와 낙서에서 태극팔괘를 얻은 것에 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고, 태극권 동작에 관한 벽화도 있었으며, 담장 너머로 태극권 박물관의 주 전시관 건물도 보였다. 장터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는 길에서 음료수 하나 사먹고 과일 좀 사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꼭대기까지 갔다 와야 해, 우리는 작년에 갔다 왔어.” 관장님과 이미 다녀오신 분들은 남고 올해 처음인 사람들만 석굴을 오르고 있다. 며칠간의 수련으로 다리 근육에 통증이 있지만 계단을 오르며 근육강화를 하고 있다. 여기가 오늘의 수련장인 셈.
(이수(伊水)강 건너편에서 본 용문석굴(서산석굴).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이 봉선사 석굴.)
용문석굴(龙门石窟)은 중국 중부의 하남(河南)성 낙양(洛阳)시 남부교외 12.5킬로미터, 용문협곡 동서 두 절벽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 서쪽의 2개의 산이 대치하고 있고 이수(伊水)가 사이로 흘러 지난다. 당나라 이후로 ‘용문(龙门)’이라고 많이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교통 요충지에 위치하고 산 좋고 물 맑고 기후가 적합해 문인 묵객들이 즐겨 나드는 명승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바위의 석질이 좋고 조각에 알맞아 옛사람들은 이곳을 선택해 석굴을 파기 시작했다. 북위 효문제(孝文帝, 기원 471∼477년) 시기부터 파기 시작해서, 400 여년에 거쳐 완성되었고 지금까지1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석굴은 감숙(甘肃) 돈황막고굴(敦煌莫高窟), 산서(山西)의 대동(大同) 운강석굴(云冈石窟)과 함께 중국 3대 석굴이며, 2000년 11월 30일에《세계유산명록》에 수록됐다.
(봉선사 석굴 앞에서 회원들과…)
남북 길이가 대략 1킬로미터, 현존 석굴이 1300여 개, 동굴 감실이 2345개, 시문과 비석조각이 3600여 점,불탑이 50여 개, 불상이 97,000여기나 있다고 하는데, 다 세어보지는 못했다. 불상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문외한의 눈에는 그 불상이 그 불상 같기도 하고 안내원과 안내판은 중국어로 되어 있다 보니 조금씩 흥미가 줄어들었다. 가장 큰 규모인 듯한 봉선사 석굴에서 단체 사진과 개인 사진을 찍고, 내려가서 빙과류를 먹었는데, 그게 더 반가웠다. 봉선사 석굴은 당나라 측천무후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불상의 얼굴은 측천무후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시원한 빙과와 함께 휴식을…)
‘이수’를 건너 맞은편 동산석굴도 둘러보고 ‘향산사(香山寺)’와 ‘백원(白園)’으로 향했다. 용문석굴에는 서산석굴과 동산석굴이 있는데 규모나 다양성 면에서 서산석굴이 압도적이며, 동산석굴은 별책부록 같은 느낌을 준다.
(‘동산석굴’, ‘향산사’, ‘백원’으로 넘어가는 ‘이수’ 다리 위에서…)
향산사는 말년에 ‘향산거사’로 불리운 ‘백거이(白居易, 772년 ~ 846년)’ 가 기거했던 곳이라고 하며, 그 옆에 위치한 ‘백원’은 ‘백거이’의 묘를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이다. ‘백원’에 있는 백거이의 묘 옆으로는 우리나라 ‘백’씨들이 와서 세운 추모비를 비롯하여 싱가포르 ‘백’씨들의 추모비와 일본사람들이 세운 추모비도 함께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백원’ 내 ‘낙천당(樂天堂)’에 있는 ‘백거이’ 상)
( 향산사 부근의 등산금지 푯말. ‘산을 오르지 마’ – 어따 대고 반말? )
낙양박물관(洛陽博物館)과 화궈(火锅)
낙양은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때에 이 곳으로 도읍을 잡아 생활했다는 말이 갑골문에 전해진다. 그리고 한(漢) 고조 유방(劉邦)이 세운 한나라 시기에 대도시로 발전하고, 황하 강을 통해 물자가 많이 들어와 경제적으로 발달한 도시로 거듭난다. 이후에도 조조가 세운 위나라 및 북위, 수나라 시기에도 수도로 역할을 하였으며, 당나라 이후에도 경제적 중심지로 활약하였다. 그런 만큼, 낙양에는 각 시기별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지금도 계속적인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다.
(낙양박물관 입구에서…)
지금의 낙양박물관은 기존 박물관 보다 훨씬 큰 규모로 작년에 새로이 완공되어 개관한 곳이다. 각 시대별로 전시관이 구성되어 있고, 최근에 개관한 곳답게 내 외부 모두 현대식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었다. 관리자도 각 전시실 별로 몇 명씩 배치가 되어 관리에 꽤나 신경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꽤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중국어로만 표기되어 있어 알기 어려웠다는 점이 아쉽다.
낙양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바깥은 완전히 땡볕이고, 우리가 타고 온 택시도 찜질방이 되어 있었다. 찜질방이 된 두 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시내로 들어가서 중국 술, 차 등을 쇼핑하였다. 먼저 술을 구매한 뒤, 관장님은 첫날 주문한 나무 빗 등을 찾으러 가시고, 나머지 일행은 차를 파는 곳에서 예쁘고 상냥한 아가씨의 차 대접을 받으며 관장님을 기다렸다. 가는 곳 마다 관장님의 탁월할 협상력으로 가격 흥정을 마무리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식사는 ‘화궈(火锅, 중국식 샤브샤브)’ 전문점으로 갔다. 이전에 왔던 일행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맥주를 곁들여 샤브샤브로 몸보신하고 내일의 수련을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그거 맛있어요?” “ 예 정말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우리방 영훈씨는 중국 요구르트를 즐겨 먹고 있다. 관장님도 열렬한 요구르트 팬 이시다. “얼마 전에 중국 우유에 멜라민 문제가 있었는데 괜찮을까요?” 나는 괜히 염려가 되었다. 영훈씨가 잠깐 흔들리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맛있게 먹는다. 호기심이 생긴다. 중국 요구르트는 과연 어떤 맛일까?
(영훈씨와 관장님께서 즐겨 드시던 중국 요구르트, 3위안으로 우리 돈 500원정도 )
며칠 뒤에 결국 한번 먹어봤는데, 내 입맛에는 별로 안 맞는 듯 하였다. 게다가 먹다가 흘리기 까지 하는 통에 썩 개운하지 못하였다. 평소 아침을 잘 안 먹었던 영훈씨는 며칠 간 3끼니를 알차게 먹은 뒤 속이 부담스럽다며 아침 거부를 하다가 점심을 쉬고 대신 요구르트로 해결하기로 하였다. 이를 보는 관장님은 못내 염려가 되시는지 계속 먹기를 권하고, 영훈씨는 피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상하상수(上下相隨)
오전 수업은 전날에 이어 ‘섬통배’에서 ‘고탐마’까지 진행되었다. ‘섬통배’에서 진소성 노사는 어깨를 유연하게 잘 활용하여 팔을 내려치는 동작이 부드럽고 힘차게 표연하는 것을 강조하시면서 직접 시연을 보여 주셨다. 이어지는 ‘엄수굉권’에서는 중심이동 시에 온 몸이 협응하여 움직이며 그에 따라 팔을
열고 모으는 동작, 힘을 빼는 ‘방송’, 이어지는 ‘발경’을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이어 ‘육봉사폐’에서 ‘단편’,’운수’,’고탐마’까지는 무게 중심이 가라앉은 상태를 유지하며 ‘미려’를 말고 자연스럽게 동작이 이어지는 것이 강조 되었다.
( 진소성 교장선생님께서 필자에게 엄수굉권을 교정하시는 모습)
오후 수업은 ‘우찰각’에서 ‘신선일파조’까지 진행되었다. ‘찰각’에서는 무게중심이 뜨지 않게 하면서 다리 전체가 채찍이 된 것처럼 차올리는 것, 차는 동작과 동시에 두 팔이 협응하여 앞뒤로 동시에 쳐 내리는 동작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찰각’이 다리를 위로 차올리는 동작과 두 손을 위에서 아래로
동시에 내려치는 동작의 협응이라면, ‘등일근’은 발을 옆으로 차내는 동작과 두 손을 양 옆으로 펼쳐내는 동작의 협응이라고 볼 수 있겠다. 태극권은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에 따라 몸의 모든 부분이 협응하여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이날 ‘하나가 움직이면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없다
-일동무유부동(一動無有不動)’ 이라는 귀결이 다시 몸으로 와 닿았다.
빠쓰의 추억
기다리던 저녁식사에 중국식 ‘빠쓰’(맛탕)가 나왔다. 여기서는 ‘고구마 빠쓰’ 뿐만 아니라, 이날 이후에 ‘감자 빠쓰’, ‘마 빠쓰’도 맛보았다. 여기에서는 ‘빠쓰’와 함께 냉수 한 그릇이 함께 나오는 데, 뜨거운 빠쓰를 찬물에 담그면 그 즉시 겉에 바른 엿이 딱딱하게 굳어서 바삭한 빠쓰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을 빨리 하지 않으면 빠쓰가 서로 엉겨 붙은 채로 굳어져서 떼어 먹기 곤란하게 되며, 심지어 접시까지 한 몸이 되는 참사를 목격하게 된다.
(좌측 상단은 오늘의 김치 ‘열무김치’, 우측 상단은 빠쓰 냉각용 냉수)
위의 사진 우측하단에 살짝 비치는 음식은 두부를 눌러서 만든 것을 재료로 만든 것인데 씹는 질감이 고기 같기도 하고 어느 정도 쫄깃한 느낌이 있어서 두부로 만들었다는 것을 듣기 전에는 정말 알기 어려웠다. 요리 사진은 아래와 같다.
( 진가구에서 조정화씨가 즐겨먹고 좋아하던 두부냉채)
이날 저녁 또 하나의 특별 요리, 바로 아래의 생선요리다. 이곳에는 주로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이용하거나 채소류를 이용한 요리가 주를 이루며 해산물 요리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아래 요리에 쓰여진 생선도 민물생선이라고 들었다. 관장님께서 알려주신 이름이 아마 홍사오위로 기억하고 있다.
(2009년 진가구 연수단의 정수연양이 가장 좋아했다는 전설의 홍사오위)
약간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기억되는데 나름 맛이 좋았다. 오늘도 땀 흘려 수련한 뒤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푸짐한 음식으로 몸보신 후 숙소로 돌아간다. 내일은 수업을 하루 쉬고 ‘용문석굴’로 관광을 떠난다.